1991년 농활과 커피
생애 최초의 농활
1991년 내 생애 처음으로 농활을 갔었다. 지금이야 ... 대학생들의 필수 코스일 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말 그대로 자원자만 가는 그런 활동이었다.
지역은 충청북도 괴산군, 금산군 지역이었고, 돌아오는 길에 월악산에 들러 쉴려다가 너무 치쳐서 그만 둔 적이 있다. 우리 집도 당시에 농사를 짓고 있었기 때문에 ...
"우리 집도 안하는데 무슨 ....?"
이라고 생각을 하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다른 곳은 어떻게 농사를 지을까?"
우리 집의 농사는 말그대로, 논농사와 딸기농사 크게 두가지로 짓는다. 물론 그것 이외에도 고구마, 배추, 감자, 밤과수원 등등을 재배를 하지만, 돈이 되는 것은 밤, 딸기, 벼 농사 정도였을 뿐이었다. 정작 집은 천리길(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7시간)이라 가기 힘들지만, 농활은 주말을 이용해 가까운 곳에서 하기 때문에 별 부담은 없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한 충청북도 지역의 농사는 스케일이 달랐다. 인삼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대체로 인삼밭만 1,000평~2,000평 이상을 가진 부농들이었고, 또한 대체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나이가 많아서 ... 대학생들의 손길을 은근히 기다리는 곳이었다. 심지어는 대학생 농활을 신청을 해놓고 거의 한달치 일을 미뤄두기도 하였던 것이다.
거기에서 나는 슈퍼스타 취급을 받았다. 벼와 피를 정확하게 구분해서 ... 뽑아냈으며, 경운기를 몰고 밭을 갈고, 또한 경운기를 이용해서 ... 농약도 뿌리고 .... 무엇보다 가장 힘든 일은 넓은 천 평 정도의 인삼밭을 매는 것이었다. 한가지 좋은 점은 ... 새참을 꼬박 챙겨주셨다는 것 .... 게다가 담궈둔 ... 6년근 인삼주를 매일 주셨다는 것이었다.
사찰을 당하다!
그러다가 한가지 충격적인 사건이 터졌다. 경찰서에서 조사를 나왔다는 것이다. 어느 대학에서 왔는 지, 학과가 뭔지를 경찰이 조사를 하러나왔다. 당시만 해도 문민정부라는 김영삼 정부였고, 설마 학생들의 농활을 사찰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 더 웃기는 것은 조사를 나온 경찰관의 태도였다.
"학생들이 고생하는 건 아는데 ... 우리도 위에서 시키니까 ... 어쩔 수 없다네! 협조를 좀 해주게."
조사를 나온 사람은 그곳의 경찰서장이었고, 나와 같이 농활을 온 사람들은 대부분 학생회 활동을 하는 운동권 출신들이었다. 나도 떠밀려 나온 측면이 없지 않았기에 의문을 가지고 물어 보았다.
나: "왜 그런 조사가 필요하죠?"
서장: "자네들도 잘 알잖나? 위에서 혹시 학생들이 의식화 교육 같은 것을 시키지 않나 하는 것이지."
그랬다. "의식화 교육"이라는 것은 운동권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계몽"이요, 정권의 입장에서는 골치 아픈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이것은 당시 정권이 불렀던 용어지 정작 학생들은 그런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농활 대장은 너무 미안해 해는 서장님이 안쓰러워서 협조를 순순히 해주었다. 그런데, 그 서장님은 바로 가지 않고, 주민들에게도 학생들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 지 일일히 질문을 했다.
거기에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사찰을 하는 주체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안기부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전전년에 안성캠퍼스의 이내창 부학생회장이 안기부 직원이랑, 동행을 한 다음 바로 이튿날 거제도에서 변사체로 떠올랐기 때문에 해당 대학의 학생들을 더 엄격히 사찰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나도 의외였지만, 정작 운동권 학생들은 농활세미나에서 우리에게 "정치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말라!"라는 지침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농활을 하는 동안에 ... 그것은 엄격히 지켜졌고, 주민들과의 유대를 깨지 않고 훈훈함이 이어졌다. 결국 그 유대감을 위해서 정치는 언급되지 않은 것이다.
커피는 자본주의의 산물
농활세미나에서 내가 버릇처럼 마시는 커피를 가져온 사람이 없길래, 커피를 찾았다가 나는 망신을 당했다. 한 선배 여학생이 말한 것은 다음과 같다.
"커피는 제국주의의 산물이며, 수입을 해야 만들 수 있는 수입산이기 때문에 자제를 하자!"
물론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당시에도 조금 오버를 한다고 생각했지만 좋은 취지였기 때문에 차로 대체를 했다. 그런데 얼마 전 ... 통합진보당의 백승우씨가 유시민씨에게 커피를 가지고 한 말을 듣고 왜 그리 그 말이 연상되었는 지, 그 말을 듣자마자 실소를 감출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