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리비아의 박정희, 카다피 궁지에 몰리다.

세에임 2011. 3. 20. 17:13

카다피에 대해 얘기를 해보자! 


지금 언론에는 카다피가 마치 악의 축인 양 얘기를 하지만, 카다피는 우리와는 친분이 두터운 리비아의 지도자였다. 그러던 것이 이명박 정부의 스파이 사건으로 리비아의 관계가 악화되었다. 


카다피는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동아건설에게 발주한 장본인이었고, 의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리비아를 강력한 의지로 개발한, 한마디로 리비아의 박정희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박정희, 전두환, 김영삼, 김대중 등 전직 국가 원수들과 친분도 적지 않았다. 


독재자들의 최후가 그러하듯이 적당히 하고, 물러났으면 안락한 노후를 즐길 수 있었겠지만 독재권력의 특성 상 그것이 쉽지 않고 그것이 그의 최후를 장식하게 된 것이다. 


리비아의 카다피는 박정희와는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지도자다. 미국과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는 것부터 시작하여 ... 강력하게 개발정책을 밀어붙인 것도 비슷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분단상황과 자원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었다. 본인도 부정부패를 즐기지 않았지만, 측근들이 부정부패를 저질렀다는 것도 박정희와 비슷하다. 실제로 최원석 전회장도 카다피가 뒷 돈을 요구한 적이 없는데, 그렇게 많은 재산을 모았다는 것에 대해 놀랐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가 대규모의 석유회사를 가지고 있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이해가 되는 항목이기도 하다. 


참으로 묘하다. 리바아 국민들도 그렇게 칭송하는 카다피가 이제는 타도해야 할 대상이다. 이미 피를 본 순간부터 그는 지도자의 자격을 잃어버렸다. 박정희도 김주열 등 여러 명의 피로 타도된 독재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향수를 가지는 일부 계층도 나름 있다. 지금처럼 빈부의 격차가 많지 않았고, 상대적인 박탈감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때가 더 살기 좋았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박정희는 빈부의 격차를 좋아하지 않았던 지도자인데, 지금 그의 정신을 잇겠다는 사람들은 그의 독재성만 계승했을 뿐 ... 박정희가 추구했던 정신은 몽땅 흘리고 있다. 


누구에게는 역할은 있었다. 일단 쿠데타로 집권한 정부가 역사에 추앙받아서는 안된다. 그런 반역집단이 인정을 받는 것 자체가 웃기는 것이다. 그의 경제발전에 대한 기여는 바로 쿠데타로 집권한 것에 대한 상쇄 밖에 되지 않는다. 분명 그는 70년대에나 잘 어울리는 개발독재자였다. 그의 권력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면 우리는 필리핀 짝이 났을 것임에 분명하다. 그가 퇴장하기 가장 좋았던 때는 바로 유신선포 때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