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과 지혜 ◆◆/시사

한글 파괴? 우리말의 오염이라고?

세에임 2009. 8. 28. 11:30

끊임없이 변하는 국어를 학자들만 인정하지 않는다.


언어는 끊임없이 변한다. 국어가 현재의 모습을 가지된 것도 60년대부터 시작하여, 70년 대에 이르러서야 틀을 갖추기 시작한다. 또한 80년 대 가서야 안정된 지위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따진다면, 현대 한국어가 체계화된 것은 아직 30~40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너무 짜게 잡았는가? 한국어만 그런 것이 아니니 너무 주눅들 필요 없다. 영어도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영어가 지금처럼 틀을 잡게 된 것은 헤밍웨이 등의 언어 개혁운동 이후이며, 웹스터와 같은 언어학자들의 노력을 거쳐서 이룩된 것이다. 헤밍웨이의 문체 개혁의 핵심은 짧고, 직설적이고, 간결한 문장이었으며, 심지어는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1)


"사전을 똥통에 쳐박아라! (Ditch the dictionary)"


국어 사전과 문법 그리고 국어를 대하는 필자의 심정도 마찬가지이다. 조지 오웰도 은유적이고, 비유적인 표현을 자체하라는 권고 하였다. 


국어는 끊임없이 변한다. 3인칭을 뜻하는 "그"(他)와는 달리 "그녀"라는 말은 한자에도 없으며, 우리 말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래의 한국, 중국, 미국의 인칭 비교를 보자!


인칭 한국어 영어 중국어
1 i
2 you
3 he
3 그녀 she

중국어의 ""와 한국어의 "그녀"라는 표현은 최근에 정식 문법으로 인정받은 말들이다. 지금은 이것이 논쟁거리나 될까 생각되겠지만, 이 말은 1926년 8월에 처음으로 나온 말이다. 양주동 박사의 "신혼기"라는 작품에서 였다. 그후 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널리 사용되게 되었다. 1965년 현대문학 3월호에서 최현배는 "그녀" 라는 말이 일본어 "가노죠(彼女)"를 흉내낸 말이라고 비난하였다. 그런데 정작 일본도 그 말이 19세기 말에 생겨난 말로 she에 대한 번역으로 생긴 말이었다. 양주동이 와세다에서 영문학 공부를 했던 1922~28년은 그 말이 유행하기 시작하였고, 그 말은 생긴 지 얼마 되지도 않았던 따끈한 말이었다. 영문학을 전공한 양주동의 입장에서는 "아! 일본에서는 이렇게 말을 만들었구나!" 였지, 그 자체를 일본에서 가져 온 것은 아니었다. 최현배는 그 말이 욕설로 들린다고 비난하였으며, 대안으로 내놓은 말이 "할미""어미"에서 나온 "그미"라는 말이었다. 1974년 국어운동순화 전국연합회에서는 "그녀"라는 말을 쓰지 말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이 정식 국어로 인정 받은 것은 겨우 10년 전인 1989년(88년말)이었다. 개인적인 관점에서 볼 때 양주동 박사는 영어와 친한 사람이고(그의 영어 강좌는 유명하였다.), 최현배 박사는 일본어에 더 정통한 사람이다. (양주동 박사는  심지어 국어에 관계대명사를 도입하자는 말도 안되는 주장을 했지만, 그의 실험정신만은 인정하는 바이며, 스스로 자신을 "국보"라고 한 말이 우습게 들리지 않는다.)  

중국도 루쉰의 작품 祝福에서 우리보다 2년 빠른 1924년 她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그녀라는 말이 생긴 것은 필요에 의해서 였지 그 자체가 없어져야 할 대상은 아니었다. 

속어, 비어로 매도 당하는 현대 국어
최현배 선생의 국어에 대한 사랑은 부정하지 않으나, 현재 국어학자들의 언어에 대한 태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들은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말들을 현대 국어로 인정하지 않으며, "오염된 언어", "비어", "속어"로 매도한다. 외국인들이 그들이 추천하는 말만 배워서 과연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할까? 이것이 필자가 그들의 국수주의적이라고 비난하는 이유이다. 예를 들어, "쪽팔리다."라는 말은 이미 20년 이상을 죽지 않고 사용되는현대어이며, 그 나름대로 용법을 가지고 있다. 친한 친구 사이에서만 가능한 말이다. 우습게도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자유롭게 사용된다. 물론 "토크쇼"나 "뉴스"에 까지 나올만한 젊잖은 표현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또한 죽어가는 국어는 그냥 죽게 내버려 두어야 한다. 그들은 죽어가는 국어조차도 끝까지 산소호흡기를  붙여 놓는다. 필자가 어릴 때 "친구"와 같은 뜻으로 사용하던 "동무"는 이미 죽은 국어이며, 북한에서 밖에 사용하지 않는다. "연인"이라는 말은 "노랫말"에나 등장한다. 그것도 아주 오래된 노래에서나 .... 즉 이 말은 사어라기 보다는 문어체로만 사용되는 단어인 것이다. 

"진지 드세요!"

이제 이 말은 노인들에게나 하는 말이다. 50대만 되어도, "식사하세요!"라는 말이면 충분하다. 1900년대 초에 언어학자들이 국어를 정립할 때 이미 정립된 국어를 가지고 연구한 것이 아니었다. 언어학자들은 그 때 많이 사용하는 국어를 가지고 정리한 것이 근대 국어였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한다. 필자가 주장하는 것 또한 "사람들이 많이 쓰는 말은 빠르게 국어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멸할 말은 그냥 죽어야 된다. 그것을 억지로 되살리고자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TV의 국어 프로그램(예를 들면, 우리말 겨루기)에서 그러한 죽어가는 말을 가지고 퀴즈를 내는 것 자체가 나는 우습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국어의 중심은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인터넷
국어학자들이 가장 인정하기 싫어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아이들은 이것으로 국어를 배우며, 학습하고, 외국인들도 이것으로 한국어를 배운다. 그들은 여기에 나오는 말들을 비어와 속어로 규정하고, 매도하는 주범들이다. 그리고 방송위원회라는 조직은 바로 그들의 앞잡이나 다름없다. 

"있어염", "했삼?"과 같은 말들은 그냥 유행어이다. 쓰지 않으면, 소멸한 말들이며,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사용하면 국어가 될 말들이다. 

한국어가 구어와 문어가 일치하는 언어라고?
정확한 말은 아니지만, 이 말에는 "거의"라는 말이 빠져있다. 당장 우리가 하는 말과 "노랫말" 그리고 서점에서 판매하는 문학 작품 속의 말을 비교해 보라. 이 말이 얼마나 우스운 지 실감하게 될 것이다. 적어도 3~10년의 격차가 있을 것이다. 

한글 창제의 취지를 부정하는 언어학자들
현대의 언어학자들은 세종 대왕의 한글 창제 취지를 부정하고 있다. 

우리 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잘 통하지 아니한다.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것을 가엾게 생각하여 새로 스물 여덟 글자를 만드니,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쉬이 익혀서 날마다 쓰는데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세종 대왕의 한글 창제의 취지 중에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말하고자 하는 바를 쉽게 말할 수 있도록 ...
2. 자신의 주장을 펼 수 있도록 ...
3. 날마다 쓰는데 편리하도록 ...

이 취지문에는 한글이 "백성들이 말하려는 바를 일상생활에서 편리하게 사용하도록 만들었다."라는 말이 그 요지이다. 이 말에는 한글을 하나의 틀에 매어두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변하는 말을 한글이라는 문자로 표현하도록 하면 족하다는 말이다. 필자가 국어의 중심을 "드라마", "영화", "인터넷"이라고 주장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이다. 하지만 유행어라는 이유로 "국어 오염"이나 "한글 파괴"니 주장하는 것은 스스로 한글 창제의 취지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바이다. 그냥 그것은 유행하다가 스스로 죽어가게 내버려 둬라! 그리고 그것을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이 쓴다면 그것이 바로 국어가 되지 않을까?